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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낙타

sa_nic 2016. 8. 20. 13:41

* 그닥 진지하게 쓴 글 아님

 

 

 

 

 

 

 등짝이 미친듯이 뜨거웠다. 마치 잔뜩 흥분한 짐승의 혓바닥이 등을 무자비하게 핥아대는 듯 불쾌한 느낌에 나는 신속하게 몸을 일으켰고 곧 내가 사막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이 뜨거웠던 이유는 저 높은 하늘에서 거만하고 심술궂은 신처럼 활활 타오르는 태양 덕분에 달구어진 모래바닥을 침대삼아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세상을 끝내버릴 기세로 타오르고 있다. 나 역시 거의 구워지고 있는 모래바닥과 비슷한 신세를 면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타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더워 미칠 것 같은 와중에도 뜬금없이 내가 사막에 와 있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그게 가능한지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해외여행을 왔던가? 일단 그것부터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설령 왔다고 해도 어째서 사막으로? 나는 왜 혼자 있는 거지? 내가 찌는 듯 더운 사막에서 홀로 버티고 섰다는 현실 외에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사실에조차 뿌옇게 김이 껴 있었다. 조금만 더 기억에 파고들기 위해 노력해보면 그렇게는 안 된다는 듯 햇빛이 사납게 쬐여 들었다.


 목덜미가 벌써부터 땀에 젖어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허무가 밀려들어 어딘가에 물웅덩이라도 없을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낙타 한 마리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낙타의 표정은 나른하고 평온했으며 더위에 허덕이는 기색 따위는 없었고 그의 맑은 눈빛은 저 모래언덕 한참 너머의 진리적이고 절대적인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순간 낙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타가 될 수는 없어도 그 낙타에게 다가가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었으므로 나는 낙타에게 다가갔다. 낙타는 놀랍게도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말했다.


 "낙타"


 나는 그 해탈한 낙타가 나에게 대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 건지 추리하기 위해 있는 힘껏 머리를 굴렸으나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 미친듯이 덥고 내가 물을 원하고 있다는 것 정도일 뿐이었다. 낙타는 그런 나를 한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휘휘 젓더니 다시 한 번 말했다.


 "낙타 낙타"


 자꾸… 뭐라는 거야? 나는 힘겹게 입을 열어 낙타에게 말했다.


 "나랑 이야기하고 싶다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줄래?"


 그러자 낙타는 마치 화라도 내는 듯한 표정으로 바꾸더니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퀘퀘한 입냄새를 풍기며 무슨 중 염불 외듯 그의 언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낙타"


 나는 더이상 이 낙타에게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걷다보면 정말 물웅덩이를 발견해서 혼자만의 축제를 즐기든 더이상 사막의 무더위를 버티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든 결론이 나겠지. 그런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어렴풋이 아쉬어오는 이유는 뭘까. 갑자기 또 혼란스러워져 나는 낙타를 돌아보았고 여전히 화가 나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까만 눈과 마주쳤다. 그래 나는 아마도 까만 눈을, 까만 머리카락이 아쉬운 것이다. 다시 앞을 보았다. 어디에도 까만색은 없었다. 목을 타고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닦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닦아도 또 흐를텐데.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내 그림자가 흔들리고 걸음이 흔들리고 온몸의 장기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의 시간을 걸었을 때 주위가 갑자기 환해졌다. 사실 너무 밝아서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현상이고 무엇 때문이든 제발 여기서 더 더워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자 어디선가 어지럽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안아줘."


 그게 누구의 목소리든 내가 좋아하는 까만 머리칼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싫은데."

 "곤란한 친구로군."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고 주위는 다시 정상적인 밝기로 되돌아왔다. 뭐였는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알 수 없을 테니까. 나는 다시 걸었다. 까만 눈이라, 그럼 그 목소리는 어땠더라. 내가 접근 불가했던 내 기억속의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귓가에 퍼졌다. 이 감미로운 순간을 어찌하면 좀 더 누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눈을 감았다. 시야는 금세 새카매졌다. 새카만 와중에 까만 눈을 가진 사람의 웃음소리가 계속 귓가를 간질였다. 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녹아내리는 듯한 흥분이 있었다. 차라리 그 편이 좋았다. 내가 아직도 걷고 있는지 아니면 멈추었는지 쓰러졌는지 숨은 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검정색 속에 빠졌다.


 입안으로 벌레들이 기어들어온다. 그것들은 작고, 뜨겁고, 맛이 없으며, 무기력하다.


 나는 눈을 떴다. 나는 또다시 모래바닥 위에 엎어져 있었다. 입안에서 모래알들이 느껴졌다. 썩 좋지 않은 느낌이라 얼른 그것들을 뱉어냈다. 그러고도 모래알의 맛은 혀끝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주위가 다시 환해졌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안아줄 마음 생겼어?"

 "젠장, 당신이 누군데."


 누운 채로 짜증 냈다. 그 낙타도 그렇고 어째서 이곳의 존재들은 이토록 제멋대로란 말인가.


 "누구도 아니고 누구든 될 수 있다."

 "안아주면 뭐 해 줄 건데?"

 "죽여줄게."


 저 미친 새끼가 진짜….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그래도 침착하게 내 의사를 전달해 주기로 했다. 나 뿐인 사막에서 이런 이상한 대화라도 나누는 게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난 죽으면 안 돼."


 꽤 오래 침묵이 흘렀다. 


 "뭐야, 하지만 이미 스스로 죽어가고 있잖아. 그러기에 난 네가 죽고 싶어 하는 줄 알았지."

 "뭐?"


 죽어가고 있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하긴 너무 더워서 죽어가고 있는 거라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럼 네가 그렇게 안기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뭐야."

 "그로써 실체를 가지게 돼."

 "유령이냐?"

 "전혀. 난 완벽하게 실존해. 단지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닐 뿐이지. 덧붙이자면 네가 있을 곳도 아니야."

 "그건 마음에 든다."


 아무렴 나는 에어컨 바람이 쾌적한 우리 집 내 방에 있어야 하지.


 "좋아, 안아줄게."


 그 말과 동시에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빛이 밝아져서 안구 보호를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눈을 감아야 하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이 부셔서 눈물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어디에선가 나는 퀘퀘한 냄새와 함께 피부 곳곳에 부드러운 털의 감각이 느껴졌다. 이건 설마…


 "낙타 낙타 낙타"


 제기랄


 "너 낙타였어?"

 "아니야. 걔넨 그냥 네가 가서 아쉬워 하고 있을 뿐이야."


 맞아, 죽여 준댔지. 내 인생은 이렇게 수많은 낙타들에게 둘러싸여서 끝나는구나. 그리고 마지막까지 덥군. 죽으면 적어도 온통 까맣겠지. 그걸로 나는 행복하겠지. 행복하겠지 행복하겠지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내 방 풍경, 이를테면 책상에 놓인 선인장. 익숙한 냄새. 그제야 나는 그토록 나의 포옹을 갈구하던 존재를 깨닫고는 헛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 너무 더워서 사막 꿈 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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