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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에게
네가 보내온 쪽지들은 잘 받았어. 사람들은 그걸 첫눈이라고 불러.
작년에 너는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 마지막으로 속삭였지. 얼음바늘로 내 온몸에 구멍을 뚫어놓고서 말이야. 돌아오는 계절들로 몸을 메워두지 않으면 그때는 더욱 두껍고 질긴 바람을 가져와 내 구멍 하나하나에 집어넣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지경으로 무너뜨리겠다고. 얇은 목련 잎에, 녹색 파도에, 금빛 달에 눈물만 눌러 담아 너에게 보낼 때면 언제나 두 손의 핏기가 하얗게 가시곤 했어. 그 떨림을 읽었니.
보드라운 첫눈을 맞아보니 네가 우리의 재회를 위해 얼마나 아프게 이빨을 벼려두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어. 곱게 갈린 눈송이에서 여전히 차가운 너의 웃음소리가 느껴졌어. 결, 너는 나만을 위해서 그토록 공들여 첨리해지는 거니. 나만을 위해서 너는 그토록 앙상해지는 거니. 매년 키가 자라나는 거니. 아무리 외로워도 너의 연인이 되기는 싫었는데. 피부에 닿자마자 녹아버릴 정도로 연약한 눈송이 한 조각에 모든 실핏줄들이 재빠르게 떨려왔어. 이 광기를 읽었니. 이제 매일 아침의 유리창 밖에는 차가운 서리가 깔려 있어. 그런 풍경을 보면 두 눈은 그대로 힘없는 눈덩이가 되어 흘러내릴 것만 같아.
결, 나는 가장 하얗게 붕괴할 준비를 마쳐가고 있으며 가장 하얗게 미칠 생각에 벌써부터 멋진 춤 동작들을 이것저것 연습해보고 있어.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너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에 이렇게 적은 글을 너에게 굳이 부칠 생각은 없어. 결, 너는 흰 서리 위로 내리던 백금빛 아침햇살을 보았니. 서리를 녹이기 위해서, 그 어떤 이야기 속 영웅보다도 극적으로 서리던 한 자락의 온기를 짐작해보았니. 나는 이 글을 아침햇살 곁에 몰래 놓아둘 거야. 내가 잘게 부서져버린 다음에 어떤 빛이 이 글을 읽고 네가 얼마나 혹독한 소년인지 알게 되도록. 너를 체포해서 가장 깊은 지옥으로 데려가 줄 수 있게. 결, 나의 아름다운 소년아, 난 가장 하얗게 쓰러질 준비를 마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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